프랑스어에 comment은 경우에 따라 매우 실용적으로 쓰이는 단어인데 첫 번째는 상대방이 한 말을 못 알아들어 되묻는 경우에 쓰인다. 이 때 우리말로는 “뭐라고?”정도로 해석이 된다. 두 번째로 자주 쓰이는 경우는 상대방이 한 말에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을 때 “뭐?”라는 의미로 사용한다.

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때 대학 동창 녀석 하나가 자기도 유학을 오겠다며 연락을 했다. 한국과 프랑스는 약 8시간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(우리나라가 빠르다) 프랑스 시간으로 새벽 3시면 한국은 아침 11시 정도이다. 한국에서 프랑스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 중 간혹 시차를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은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그렇다. 그런데 동창 녀석은 나이도 젊은 것이 프랑스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. 짜증나는 목소리로 “왜 임마?”라고 했더니 글쎄 자기도 유학을 갈 테니 공항으로 마중 나오라는 것이었다. 오지 말라는 진정어린 나의 충고를 전적으로 무시한 녀석은 결국 프랑스에 왔고 숙소를 정하기 전 우리 집에서 약 3주간을 머물면서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나의 피 같은 시간과 쌀을 축냈다.

학창 시절 프랑스어를 나와 쌍벽으로 못하던 녀석은 회화 실력을 공짜로 향상시키기 위해 프랑스 여자를 사귀었다. 그런데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던 것이 한국에 있을 때 녀석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의 생김새라기보다는 동양 쪽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있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곤 했었다. 그러나 프랑스에 오자마자 또래의 프랑스 여자애들은 녀석이 어린 왕자를 닮았다는 등 어이없는 소리를 해대며 녀석에게 꽤 호감을 갖는 것이 아닌가.

어쨌건 간에 프랑스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어느 날 녀석이 담배 가게에 가서 자신이 피는 담배 이름을 댔는데 주인이 “Comment ?"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. 사연인 즉 담배 이름이 프랑스어 발음 중에서 우리말에 [ㅈ]에 가까운 소리가 들어가는데 녀석이 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주인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. 결국 손가락으로 담배를 가리켜야만 했던 녀석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집으로 돌아왔다. 그리고는 여자 친구로부터 그 발음을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고 이제는 하산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자마자 다시 담배 가게로 갔다. 그리고 담배 가게 주인에게 자신 있게 대화를 시작했다:

- 안녕하세요? 잘 지내시죠? 가족 분들도 잘 계시구요? 오늘 날씨가 참 화창하네요. OOO.

담배 주세요.

녀석은 이 대화 내용을 딸딸 외웠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쳤지만 주인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"Comment ?"이었다. 이번에는 담배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는 했지만 평소 친하지도 않은 웬 동양 녀석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가족 안부에 날씨까지 이야기하니까 주인은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었다. 그래서 담배 이름 자체를 듣지를 못해 “다시 한 번 말해 달라”는 의미로 Comment ?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었다.

그런데 녀석은 자신의 발음이 또 신통치 않아 주인이 못 알아들은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고는 “공부를 계속해야 하나?”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.

지금은 그 여자 친구랑 결혼하여 정말 예쁜 딸을 낳고 프랑스에서 15년 넘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데 아마 나보다 훨씬 프랑스어를 잘 할 것이다. “어이 친구 잘 지내고 있는가?”